전통 떡국의 지역별 다양한 육수 방식

설날 아침을 대표하는 음식인 떡국은 전국 어디서나 즐기지만, 그 국물의 깊이와 풍미는 지역에 따라 매우 다릅니다. 소고기 장국, 사골, 닭육수, 해산물, 돼지고기까지—떡국에 담긴 육수의 다양성과 그에 얽힌 지역 문화, 상징, 조리법까지 자세히 살펴봅니다. 오늘날 가정에서도 응용할 수 있는 지역별 떡국 육수의 매력을 알아봅니다.

굴떡국

 

설날 떡국, 한국인의 정서와 음양오행이 깃든 상징적인 한 끼

떡국은 한국 설날의 상징이자 세배 후 온 가족이 둘러앉아 함께 먹는 전통 음식입니다. 긴 가래떡을 얇게 썰어 흰 국물에 넣고 끓이는 이 음식은 새해의 새하얀 시작, 장수를 의미하며, '한 살을 더 먹는다'는 개념이 음식과 연결되는 독특한 문화적 상징성을 지닙니다. 하지만 이 떡국은 단순한 ‘한 가지 국물’이 아니라, 각 지역의 기후, 식문화, 자원에 따라 육수 방식부터 고명, 떡의 종류까지 다양하게 발전해 왔습니다. 이는 단순히 조리 방식의 차이를 넘어, 각 지역이 가진 정서와 철학, 그리고 조상 대대로 이어온 식생활의 지혜를 보여주는 한 단면입니다.

1. 수도권과 서울식 떡국: 맑은 소고기 장국의 단아함

서울 및 경기 지역의 전통 떡국은 양지머리나 사태로 우린 맑은 소고기 장국이 기본입니다. 고기 특유의 감칠맛이 은은하게 스며든 맑은 국물은 투명하고 단정한 인상을 주며, 새해의 새 출발을 상징하는 ‘백색’과도 잘 어울립니다. 보통 고기는 삶아서 찢어 고명으로 쓰며, 계란지단, 김가루, 대파, 참깨 등도 함께 올려 깔끔하게 마무리합니다. 이 방식은 간결함과 절제된 맛이 특징이며, 조선 후기 궁중의 영향을 받은 예법이 그대로 반영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2. 경상도식: 사골 육수와 기름진 보양 떡국

경상도에서는 사골이나 잡뼈를 우려낸 뽀얀 국물이 주를 이룹니다. 사골 떡국은 오랜 시간 고은 진한 국물이 주는 포만감과 고소함이 일품이며, 남성 중심의 장정이 많은 가정이나 명절 보양식으로 특히 선호됩니다. 사골 국물은 일반적으로 6시간 이상 고아야 맛이 깊어지며, 이 국물에 가래떡을 넣고 끓여내면 고소함과 쫄깃한 식감이 조화를 이룹니다. 고명으로는 계란지단보다는 소고기 볶음, 마늘 슬라이스 등을 얹는 경우가 많아, 고기 비중이 높은 것도 경상도식의 특징입니다.

3. 전라도식: 굴, 멸치, 다시마가 어우러진 다채로운 바다 육수

해산물이 풍부한 전라남도는 떡국에도 바다의 맛을 더합니다. 특히 남해안의 굴이나 멸치, 홍합 등을 육수의 기본으로 사용하며, 여기에 양파, 마늘, 다시마까지 넣어 국물의 풍미를 다층적으로 끌어올립니다. 굴떡국은 대표적인 전라도식 떡국으로, 뽀얗고 시원한 국물에 굴과 떡, 계란을 넣어 끓이며, 김가루와 실파로 고명합니다. 자극적이지 않지만 깊은 바다의 향을 느낄 수 있어, 입맛이 없을 때에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습니다. 또한 전라도는 고명 구성에서도 다양성을 보여주며, 명절의 풍성함을 상징적으로 표현합니다.

4. 강원도·충청도식: 닭 육수와 자연 그대로의 소박함

내륙이 많은 강원도와 충청도 지역에서는 소고기보다 닭 육수를 자주 사용합니다. 닭은 비교적 저렴하고 지방이 적으며, 담백한 맛을 내는 재료로, 설날처럼 기름진 음식을 많이 먹는 날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습니다. 닭육수를 낸 후 가래떡과 무, 대파, 마늘을 넣고 끓이며, 일부 가정에서는 떡국에 감자나 감자옹심이를 넣어 탄수화물의 식감을 더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특히 강원도는 메밀 생산이 활발한 지역으로, 메밀떡을 함께 넣기도 합니다. 이는 자연을 따라 살아온 강원도의 음식 철학이 녹아 있는 전통입니다.

5. 제주도식: 돔베고기 육수의 진한 감칠맛

제주도에서는 소고기보다 돼지고기를 활용한 육수가 주류입니다. 특히 ‘돔베고기’라 불리는 삶은 돼지고기를 삶은 물을 기본 육수로 사용하며, 여기에 무, 마늘, 대파를 넣고 국물 맛을 더합니다. 제주식 떡국은 맑기보다는 약간 탁하고 깊은 감칠맛이 도는 국물이 특징이며, 고명으로는 돔베고기를 얇게 썰어 얹거나, 삶은 무채와 실파를 곁들이기도 합니다. 이는 제주도의 유교문화보다는 실용 위주의 삶에서 파생된 소박하고 실질적인 조리방식으로 해석됩니다.

6. 떡의 형태와 고명의 다양성

떡국에 들어가는 떡 또한 지역에 따라 다릅니다. 수도권과 중부지방은 흰 가래떡을 얇게 썬 원형 떡을 사용하지만, 전라도에서는 납작하면서도 두꺼운 형태의 떡을, 강원도에서는 메밀떡이나 감자떡을, 충청도에서는 조랭이떡을 함께 넣는 경우도 있습니다. 고명 또한 지역별 차이가 큽니다. 서울은 계란지단, 김가루, 소고기 볶음을 사용하고, 전라도는 고추채, 부추, 마늘, 실파 등 색감이 풍부한 고명을 올려 화려한 상차림을 연출합니다. 경상도는 심플하지만 고기 양이 많으며, 강원도는 나물이나 두부를 고명으로 얹기도 합니다.

다양한 육수 방식에 담긴 지역의 삶과 정신

전통 떡국은 단순히 새해의 시작을 알리는 한 끼 식사 이상입니다. 각 지역의 자연, 역사, 생활 방식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음식이며, 그 육수 한 숟가락마다 조상들의 지혜와 지역의 이야기가 깃들어 있습니다. 맑고 담백한 장국부터 진한 사골, 바다 내음이 가득한 해물 육수, 구수한 돼지 국물까지—그 무엇이든 정답은 없습니다. 다만 중요한 것은 가족과 함께 둘러앉아 한 해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하며, 한 그릇의 따뜻한 국물 속에서 따뜻한 정과 전통을 이어가는 마음입니다. 이번 설에는 우리 고장의 떡국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의 떡국도 한 번 시도해보시길 바랍니다. 그 안에는 그 지역 사람들의 정서와 철학, 그리고 한국 음식문화의 깊은 뿌리가 담겨 있습니다.